걸어가

유하

옆구리에 성경책을 끼고 가는

오후의 노신사처럼

지하철 앞에 작은 의자에서

주먹밥을 먹는 아주머니처럼

비닐봉지 들고 하루종일 헤맨

티비 다큐 속 저 사람처럼

수진이가 보낸 푸른 새벽녘의

산책길처럼 그 사진처럼

조카의 작은 손에 들려있는

퍼즐 조각처럼 그 조각처럼

할머니의 전화 부재중 전화

걸어

걸어가

걸어

걸어가

보온병에 연유 가득한

커피를 마시는 기사님처럼

따뜻한 햇살 속 배 대고 누워

낮잠을 자는 저 강아지처럼

그걸 바라보며 무거운 눈꺼풀을

감아보는 주인처럼

어지러운 마음 놓아 두려

지도 없이 떠난 저 사람처럼

느린 걸음마에 자꾸 뒤뚱이는

서우처럼 우리 서우처럼

언니의 옷들 늘어난 옷들

걸어

걸어가

걸어

걸어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