편지

안예은

기울어져 도는 지구가

태양과 제일 멀어질 때

잔뜩 젖은 공기 속에서

너를 처음 만났던 날

우리 나름대로 친했는데

아니었다면 미안하고

언제까지나 함께일줄만 알았던

너에게 했어야 할 그 말

좋아했다고 너를 좋아했다고

시시한 농담을 속삭여가며

숨죽여 웃던 그 순간까지도

좋아했다고 모두 좋아했다고

나는 네 앞에만 서면

네 앞에만 서면

오 멈춰버린 시간 속에

너 홀로 밝게 웃고 있어

난 바보처럼 서 있다가

마음을 감춰두고

너를 또 그냥 보낸거야

아직 읽어주고 있구나

버리지 않아줘서 고마워

셀 수 없이 많은 다짐들 사이에

덩그러니 남아버린 그 말

행복했다고 늘 너와 함께여서

갑자기 찾아온 소나기를 피해

내달리던 그 순간까지도

행복했다고 매일이 행복했다고

나는 네 곁에 있으면

네 곁에 있으면

오 멈춰버린 시간 속에

너 홀로 빛을 내고 있어

난 바보처럼 서 있다가

진심을 미뤄두고

너를 또 그냥 보낸거야

우리 다시 만나게 되면

내가 너를 찾아간다면

더는 망설이지 않을래

너의 손을 잡고

두 눈을 맞추고 숨을

가다듬고 말할거야 사랑해

오 멈춰버린 시간 속에

서로의 눈을 마주보고서

못다한 이야기들을 끝내면

서로의 품에 안겨

다시는 멀어지지 않게

꼭 하고 싶었던 편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