내게, 그 시간들이

시나 쓰는 앨리스

새로 깎은 연필이 몽당이 되어가던 시간

콧날을 세운 지우개가 뭉툭해지던 시간

칸칸이 빈 공책이 채워지던 시간

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자라던 시간

 

흙투성이 체육복이 닳던 시간

트라이앵글이, 캐스터네츠가 울다 웃던 시간

스케치북에 하늘과 꽃을 옮기던 시간

세 자리 숫자를 더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던 시간

 

시를 노래하고, 가만히 있어 본 시간

마음은 열려있고 누구든 사랑할 수 있던 시간

열린 마음만큼 어디든 갈 수 있던 시간

배움의 그 시간들이 계속 살아가게 한다

 

새로 깎을 필요 없는 연필은 충전하고

콧날을 세운 지우개의 콧대는 영원해

칸칸이 빈 공책은 책장만 채워가고

손가락 끝으로 풍경을 훔치는 시간

 

흙을 밟아볼 땅은 좀처럼 찾기 힘들고

배우고 싶단 생각만 가득한 악기들

스케치북에 담았던 하늘과 꽃은

액정에 맺힌 채 어딘가 잠들었겠지

 

시를 노래하고, 가만히 있어 본 시간

마음은 열려있고 누구든 사랑할 수 있던 시간

열린 마음만큼 어디든 갈 수 있던 시간

배움의 그 시간들이 계속 살아가게 한다

 

열린 마음만큼 갈 수 있던 시간

그 시간들이 계속 살아가게 한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