키르케 Kirké

심규선

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나를 본다

이건 결말이 여러 갈래인 기괴한 꿈의 이야기

나의 온몸은 젖어버리고 그 괴물은 눈을 뜬다

그 짐승이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가

 

발톱을 꺼내 이빨을 드러내 그냥 지진 않을 거야

어차피 영원히 도망칠 순 없어 어디로도

 

물러나 저 멀리로 사라져

내게서 걷어가 네가 여기 드리운 절망을

난 울지 않을 거야 겁내지도 않을 거야

어차피 우린 전부 상처투성이의 짐승

 

 

오 아버지 당신이 이겼어요 나를 괴물로 만드셨네요

난 한줌의 사랑과 온기나 애착을 구걸했을 뿐인데

오 어머니 난 이제 지쳤어요 나를 먹이로 바치셨네요

다 사자나 이리가 아니라면 결국 돼지로 변하더군요

 

아 무의미가 나를 관통하여

내 안에 남은 물을 가지고 떠나버렸네

난 메마른 사막이며 분노로 들끓는 열기인데

어째서 하나도 목이 타지, 목 마르지 않은 걸까

 

칼집을 꺼내 속셈을 드러내 이제 너를 해칠 거야

어차피 사람은 도망칠 수 없어 어둠에서

 

물러나 저 멀리로 사라져

내게서 가져가 네가 여기 심어준 열광을

널 믿지 않을 거야 사랑하지 않을 거야

어차피 우린 전부 상처투성이의 짐승

어차피 우린 전부 상처투성이의 짐승

어차피 우린 전부 상처투성이의 진심

 

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

심연 또한 나를 본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