자화상

조연호

하얀 도화지 위에

멍하니 비춰진 그림자만 바라봤지

어디서부터 내 모습을 그려가야 하는지

끝내 알 수 없어서

 

한참 망설이다가

무심코 이끌린 그림자의 선을 따라

그려가 본 나의 자화상은

그저 보잘것없는 까만 선 동그라미 밖에

 

날 그려가고 싶어 채워가고 싶어

사라지지 않게

화려한 색 물감은 없어도

내가 내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

그리고 싶어

 

얼마나 지났을까

이윽고 마주한 내가 그린 나의 얼굴

여기저기 삐뚤한 곳 투성이

생기 없는 눈코입

원래 내모습이 아닌데

 

날 그려가고 싶어 채워가고 싶어

사라지지 않게

화려한 색 물감은 없어도

내가 내 모습을 기억할 수 있도록

그리고 싶어

 

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

적어도 내가 날 잃지 않도록

 

나 완성해갈 거야 채워 나갈 거야

사라질순 없어

어설픈 선 투박한 색이라도

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천천히

그려갈 거야