뒤죽박죽

배드엔드 (BADEND)

곰팡이 핀 옷을 입고

아무것도 모를 때

친구를 미끄럼틀에서 밀고

구급차가 오는데

어떻게 해야 되나

아빠한테 말 하지마 제발

집 들어올 생각 마

엄마 손 붙잡고 오늘 밤을 지새우나 봐

 

가난에 대해 배웠던 건 유치원 다닐 적에

남과 날 비교했던 것도 아마 그 언저리에

아파트 사는 애 옆 내 주소는 반지하 열 평 남짓에 밀린 월세에

엄마가 고개를 숙이는 곳 그 안쪽에는 빨갛게 익은 압류 딱지들이

여기저기 붙어있어 누런 벽지엔 핏자국이

나를 좀 먹게 만들지만 어리었으니까

친구들을 집에 들여보내지 말란 엄마의 말

은연중 날 지켜줬으니까

8살 되던 해 내리 비가

쏟아져 엄마와 세숫대아로 빗물을 퍼나르

다 지쳐서 잠들어 비가 많이 온 날은 모두 다 그럴 줄 알았지만 다음날이 되고야 알았지

마르지 않은 옷에 마르지 않는 관심

서울은 온종일 비가 내려

내 불만에 엄마도 비가 내려

 

많은 것을 알아차린 듯

시끌벅적 요동친 비극

거친 세상 속 그럴 수도

있지 하며 숨을 쉬는 이 수도

많은 것을 알아차린 듯

섞고 섞여 가는 아이들

거친 세상 속 그럴 수도

있지 하며 숨 쉬네 너도나도

 

세상은

세상은 뒤죽박죽 눈 뒤집지

어딘지 모를 곳에 발 디디지

다들 따라오라 말들 하지만

많은 것을 알려주려 하지 마

세상은 뒤죽박죽 눈 뒤집지

이름 모를 곳을 향해 서 있지

다들 따라오라 손짓하지만

많은 곳을 함께 하려 하지 마

 

엄마는 힘들어 어딘가 기대고 싶었나 봐

어느 날부터 누군가 집에 엄마를 찾아와

열심히 기도했지만 그건 신이 아니었나 봐

뒤집힌 십자가 아빠의 폭력만 커졌잖아

동네 아줌마들 우리 집을 욕해

구멍가게 빌린 돈에 몇 백 보태

그 돈 우린 본 적 없는데 언제 실은 구멍 난 아빠 주머니 속에

그 아저씨 술 담배도 안 하면서 지 마누라 애새끼들 패고서 돈도 많이 빌렸다더라

옆 반 선기네 아빠는 왜 이리 학교에 자주 와 애새낄 쥐잡듯 패고서 아주 난리도 아니드라

소문은 겨울 보다 조금 더 차갑게 나를 깨워

칼보다 날이 선채로 내 가슴 어딘가를 베어

졸업이 다가올 때까지 4번의 이사를 해

괜찮냐 물어주던 친구 말에 뒤죽박죽해

 

많은 것을 알아차린 듯

시끌벅적 요동친 비극

거친 세상 속 그럴 수도

있지 하며 숨을 쉬는 이 수도

많은 것을 알아차린 듯

섞고 섞여 가는 아이들

거친 세상 속 그럴 수도

있지 하며 숨 쉬네 너도나도

 

세상은

세상은 뒤죽박죽 눈 뒤집지

어딘지 모를 곳에 발 디디지

다들 따라오라 말들 하지만

많은 것을 알려주려 하지 마

세상은 뒤죽박죽 눈 뒤집지

이름 모를 곳을 향해 서 있지

다들 따라오라 손짓하지만

많은 곳을 함께 하려 하지 마