오이지

천용성

오이지 좀 다오

라면 스프를 넣어 끓인 찌개에

몇 년 전 피자에 딸려 온

피클을 곁들이고

 

아무도 모르게

화장대 밑 작은 쓰레기통에

버려진 솜뭉치 화장지

꺼내어 말려 쓰고

 

버려지는 모든 게 너무 아까워

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자꾸 모으기만

죽을 때 싸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

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자꾸 모으기만

 

몰래 내다 버린

곰팡이 쓴 책 고장 난 워크맨

고쳐 쓸 재주도 없지만

운동 삼아 주워 오고

 

버려지는 모든 게 너무 아까워

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자꾸 모으기만

죽을 때 싸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

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자꾸 모으기만

 

밭을 쪼개 만든

비만 겨우 피한 지붕 창고엔

어떻게 켜는지 모르는

기계가 한가득