어느 배우의 노래

이승현

내 좁은 책장에

얼마나 많은 책들이 쌓여있는지

빛바랜 책갈피 갈피마다

얼마나 많은 편지를 넣어놨는지

이제는 날마다 펼쳐보지 못해도

힘들 때마다 문득 떠올라

그 모든 편지의

첫 줄과 마지막 줄

 

내 낡은 창가에

얼마나 많은 새들이 날아오는지

새들이 잃어버린 깃털마다

얼마나 낯선 숨결이 들어있는지

이제는 날마다 창을 열지 못해도

비가 내리면 문득 생각해

그 모든 새들은

어디로 갔을까

 

어느 날 내가 사라지면 편지들은

새가 되어 날아가겠지

어쩌면 나를 찾아 빙빙 돌다가

내 창문을 기억하려 찡그리다가

조용히

천천히

깨닫겠지

그이는 사라졌구나…

그땐 부디 훨훨 날아가기를

 

내 슬픈 가슴에

얼마나 많은 이름이 살다 갔는지

그들이 머무르던 자리마다

얼마나 많은 장미가 피어났는지

이제는 날마다 애태우지 않아

슬픔을 마시고 피어난 장미가

기쁨을 토하며 진다는 걸

난 알아

나도 그래

그러니까 꽃이 져도

걱정하지 마