붉은 여우

안예은

시작은 꼭 행복할 것 같던 이야기

그런 뒤엔 이미 정해져 덮쳐오는

 

소녀는 아마도 몰랐을

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

 

전부를 주어도 제자리일세

피비린내만 짙어가노니

빛나는 두 눈이 타오르는 날

아아 그들은 어디로 가나

 

하룻밤의 꿈을 영원히 꾸는 듯해

깨어나면 현실 지독하게도 똑같은 이야기

 

아무도 아마도 모를

박제된 연인의 멈춘 시간

 

사랑을 하여도 알 수가 없네

붉은 바람만 불어오나니

잘린 머리칼이 흩어지던 날

아아 그들은 무엇이 되려나

 

나 인간이란 착각에

나 지옥 같은 영겁에

 

죽이고 죽여도 제자리일세

한숨이 체념 실어가노니

달리고 달려도 재앙의 품 속

뒤엉킨 채로 지금도 함께