운수좋은 날
이문세
이리 저리 꼬불꼬불 골목길을 따라 돌아
영희 집 대문 앞에 우뚝 섰다.
초인종을 눌러 볼까 편지 한 장을 써 놓고 갈까
아니면 확 돌아갈까
남자 체면에 그냥 이야 갈 수는 없었지만
어디서 들리는 내 이름 이름
그 어디서 들리는가 자라목을 쑥 빼들고
두리 두리 두리번거렸다.
바로 이내 뒤 옥상 위에서 영희가 나를 부르네
빨리 빨리 나오라고 손을 들어 불렀었지 영희는 빨리 나왔지
빨리 빨리 나온 건 좋았지만
바로 뒤를 쫓아서 호랑이 아버지가 나오셨네
어쩔 줄을 모르다가 정신을 차리고서
남자답게 인사 여쭸지
댁의 따님과 사랑하는 사이였는 사이라고
또박또박 말씀드렸지
영희 아버님 껄껄껄 웃으시며 잘 해 보라 말씀하셨네
나는 나는 너무 좋아 온 세상이 내 것 같았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