봄바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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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는 내가

빨갛던 노랗던

흰 도화지 같은 눈 위에

흐드러지지는 않아도

퍽 아름답게

피어날 줄

알았어

 

피우지도 않은 내 텅 빈 가지를

꺾어간 그 사람 때문일까

꽃 한 송이 없음에도 내게 머물던

그 사람 때문일까

 

사실은 나도

이 봄에

아름다운 한 송이를

피워내고 싶어

하지만

나는

이 봄에도

기대하지 않으려 또 입술을 꾹 깨물어

 

가지 위에 올려둔 책임의 무게들을

어느새 전부 내려놓았어

앙상하게 굽어버린 내 가지 위에는

이젠 올려지지도 않아

 

사실은 나도

이 봄에

아름다운 한 송이를

피워내고 싶어

하지만

나는

이 봄에도

기대하지 않으려 또 입술을 꾹 깨물어

 

아직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

어른이라는 껍질을 둘러버린 나

하지만 쉽게 상처받던 그때보다

작은 바람에도 더 슬퍼지는 것만 같아

이 작은 바람을 봄바람에 실어 보낼래