비가 오던 날들 중에

정해일

비가 와서 다행이야

너와 걷던 길가에

흔적들만 쌓인 게

다 쓸려져 가도록

비가 와서 다행이야

헤어지는 하루 끝에서

괜히 날이 좋으면 더 슬플까 봐

숨도 못 쉬겠다고

널 쳐다볼 용기가 안 나

시간이 약이라고 해도

지금 아픈 걸 어떻게 해

헤어지지 말자고

우리 추억 다 잊을 수가 있겠냐고

난 안될 것 같아

비가 오던 날들 중에

괜찮았던 날이 없었던 듯해

아프던 기억 다투던 순간 전부 말이야

비가 오던 날들 중에

오늘이 가장 싫은 날이 될 것 같아

너를 보내는 지금 말이야

주저앉아 울었어

애처럼 떼쓰고 싶어서

간절했던 거겠지 아마

아무 소용 없을 테지만

비가 내리고 있어

난 이렇게 널 붙잡으려 애쓰는데

우린 이제

비가 오던 날들 중에

괜찮았던 날이 없었던 듯해

아프던 기억 다투던 순간 전부 말이야

비가 오던 날들 중에

오늘이 가장 싫은 날이 될 것 같아

너를 보내는 지금

하필 못해준 것들만 떠올라

행복했던 얘길 하고 싶은데

헤어지지 마 이 말 밖엔 나오질 않아

이 비가 그쳐가는 듯해

이미 너는 뒷모습만 보이는데 난

차라리 비가 내리길