사랑한 후에

김기태

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

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

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

집으로 하나 둘씩 돌아가는데

나는 왜 여기 서 있나

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

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

이젠 잊어야만 하는 내 아픈 기억이

별이 되어 반짝이며 나를 흔드네

저기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의

커다란 울음으로도 달랠 수 없어

나는 왜 여기 서 있나

나는 왜 여기 서 있나

왜 왜 왜

어디서 왔는지 내 머리 위로

작은 새 한 마리 날아가네

이젠 잊어야만 나는 기억이

다른 하루를 재촉하는데

(종소리는 맑게 퍼지고)

(저 불빛은 누굴 위한 걸까 새벽이)

새벽이 내 앞에 다시 설레이는데

다시 설레이는데