피어나

Lucia(심규선)

한 조각 햇빛도 들지 않는

그런 캄캄한 궁지에

바람을 타고서 날아왔나,

작고 외로운 꽃씨

어둡고 후미진 골목에서

넌 뿌리를 내렸지

눈길조차도 머물지 않는 그런,

꼭 버려진 아이같이

 

구둣발에 채이고 머리 위

태양은 타는 듯 뜨겁네

아침이 더디 오길

긴 밤 지새우며 달빛에 위로해

여린 줄기 사이로 잎맥을 따라서

밀어 올리는 건

외로움도 아니요,

원망도 아니요

살아있다는 증거

 

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

아니라도 꽃은 피어나

매일 아프고 두려운 일들에

짓밟혀도 꽃은 피어나

멍든 가슴에 오래 맺힌

꽃 터지듯 병든 이 세상에

너의 향기로 너의 몸짓으로

디디고 일어나 피어나

메마른 바람이 허공위로

자장가를 부르면

의미조차도 알지 못해도 슬퍼,

꼭 엄마의 노래 같이

헛된 꿈은 쌓이고 거리 위

세상은 차갑게 식었네

안개비라도 오길

긴 밤 지새우며 별빛에 기도해

어린 가지 사이로 잎새

끝끝마다 뻗어 올리는 건

그리움도 아니요,

핑계도 아니요

살아있단 증거

 

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

아니라도 꽃은 피어나

매일 아프고 두려운 일들에

짓밟혀도 꽃은 피어나

멍든 가슴에, 오래 맺힌

꽃 터지듯 병든 이 세상에

너의 향기로,

너의 몸짓으로 디디고 일어나

 

사람들은 그 꽃의 이름을 몰라

영원히 그럴지 몰라

누가 봐주지 않아도

너의 꽃 피워올려

이 세상이 더 이상

낙원이 아니라도

 

이 세상이 더 이상 낙원이

아니라도, 꽃은 피어나

어떤 불행에 가난에

아무리 짓밟혀도 꽃은 피어나

너의 가슴에 오래 맺힌

꽃 터트려 멍든 이 세상에

너의 향기가 멀리 퍼지도록

고개를 들어,

자. 피어나