음악가의 연인

Lucia(심규선)

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

내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

하찮게 느껴지잖아요

지금까지 걸어왔던 저 굽은 길도

 

밀물도 아니고 썰물도 아니고

수평선에서 밀려든 파도도 없는데

먼 바다가 가장 잔잔할 때에도

나는 이리저리 혼자 휩쓸려 밀려나네요

저 망망대해로

 

어째서 내게 머물러주나 너는 아름다운데

나와 함께 길도 없는 밤을 헤매어주나 너는

상처받으며 기꺼이 나의 시를 경청해주나

 

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

길을 잃고 너무 멀리 온 것만 같아서

두렵고 슬퍼지잖아요

이제 와서 돌아갈 순 없는 이유로

 

네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닌데

밖에서 닥친 무엇이 우리를 가르고

속마음은 아주 반대라 하여도

서로 해선 안 될 말로 무심코 할퀴어 버리네

늘 후회하여도

 

어째서 나를 붙들어주나 너는

명예도 없고 저만치 쌓아올릴 부도

없는 내 길 가라 해주나 너는

등을 맞대며 기꺼이 밤을 함께 버티며

 

내게 머물러주나 너는 아름다운데

나와 함께 어지러운 삶을 견뎌 내주나 너는

시인의 연인

영원히 내 곁에 음악가의 연인